정치 정치일반

법안 공동발의 고질적 관행 심각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6.07 14:52

수정 2015.06.07 14:52

국회법 개정안 위헌논란을 계기로 국회의 공동발의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가운데 박 대통령도 과거 이번 개정안보다 더 강제력이 큰 개정안의 공동발의에 참여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와 관련 야당은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관련 과거와 현재 입장이 엇박자가 난다며 공세를 펼쳤지만 국회의 공동발의 관행을 우선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의 공동발의 제도가 의원들간 친밀도에 따라 서명을 받는 식으로 변질돼 법안의 취지가 퇴색되는 관행이 심각하다. 공동발의에 의원들 이름을 올리기 위해 법안에 대한 엄밀한 검토 없이 친분이 있는 의원들의 서명을 받는 관행과 법안발의수를 올리기 위해 너도나도 법안 발의에 공동서명을 해주는 행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친분따라 관행적 명의 빌려주기 심각

야당이 국회법 개정안 논란을 둘러싸고 박 대통령에 공세 수위를 높였지만 정치권 전반에 번진 공동발의제의 고질적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의 경우 야당 초선의원 시절이던 지난 1998년 12월 당시 안상수 의원(현 창원시장)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동료 의원 33명과 함께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최근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 문제를 지적하며 과거 공동 서명한 게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1998년 국회에 들어갔을 때 이야기다. 그런 걸 감안해야 한다"며 공동발의 관행이 국회 전반에 깔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야당은 청와대가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한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공동발의 관행에서 전현직 의원 상당수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국회내 자정운동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원들간 친소관계를 따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 10인의 목록을 보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하려면 발의자 외에 9명, 총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만 법안을 발의하는 필수요건인 9명의 동의자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법안 내용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지만 이 원칙이 그대로 지켜지는 것은 드물다는 게 여러 국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A의원실 관계자는 우선 공동발의자로 '사인'할 때 의원들이 직접하는 경우와 보좌관들이 알아서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하며 "전자는 드물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안 담당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검토 후에 서명하는 게 대다수"라고 말했다.

중요 법안의 경우 의원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의원총회나 본회의장 같이 동료 의원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장소에 서류를 들고 가 돌며 '사인'만 받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공동발의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법안을 신중히 검토했다고 보긴 어렵다.

사실상 공동발의 명의자에 서명하는 것조차 보좌진이 대신하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보좌관 출신 의원의 경우는 공동발의 서명에 다른 의원들보다 신중을 기하는 경우가 많다.

의원보다 보좌관의 역량이 중요한 분위기에서 친한 보좌관끼리는 "그냥 하나만 해줘"라며 법안을 '들이미는' 경우도 있다는 전언이다. 이 때도 서로 친분관계가 없는 사이면 이런 대화가 오갈 수 없으니 법안의 공동발의 목록은 곧 의원, 혹은 보좌진끼리 '친한 방'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는 셈이다.

■법안발의 실적 위해 이름 대여도 도마

공동발의 제도가 과다입법 및 졸속 입법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입법기능 정상호를 위해 법안실명제와 공동발의 정족수 축소가 도입됐지만 이를 악용한 경우도 적지 않다.

우선 법안실명제는 의원들이 입법활동에 보다 책임감을 갖고 적극 참여를 독려키 위해 지난 2000년 도입됐다. 실제 2013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국회의 의원입법 현황과 주요국 사례의 비교'에 따르면 법안실명제가 시행되기 전인 15대 국회의 의원법안 발의 건수는 806건에 불과했던 데 반해 16대 1651건, 17대 5728건, 18대 1만1191건 등으로 급증해 의원입법 활성화를 이끌었다. 공동발의 정족수가 20명에서 10명으로 조정된 지난 2003년 이후 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도 회기당 평균 88건 늘어나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법안 공동발의 요건이 완화되면서 의원법안의 가결 비율이 낮아지고 동일한 법안명으로 발의된 법률안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동발의제도 논란을 계기로 국회의 입법문화를 개선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C의원실 관계자는 "보좌관들은 서로 선수들이라 이상한 법안에 사인해달라고 하면 부탁하는 사람도 부끄럽다"면서도 "어째됐든 의원명의로 하는 공동발의이기 때문에 검토를 아예 안하지는 않지만 보통 전화로 '이러이러한 내용인데 서명 부탁한다'고 하면 큰 무리가 없는 한 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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